클라이언트가 보낸 계약서를 받았을 때 대부분의 프리랜서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대로 사인하거나, 어색해서 못 물어본 채 작업을 시작하거나. 그런데 6개월 뒤 분쟁이 터지면 그제야 계약서를 다시 꺼내 봅니다. 그때는 늦습니다.
이 글에서는 한국 프리랜서가 가장 자주 만나는 외주 계약서 함정 5가지를 정리합니다. 모두 실제로 분쟁이 자주 발생하는 패턴이며, 민법·하도급법·공정거래위원회 표준약관 기준으로 협상 가능한 조항입니다.
1. 무한 수정·재작업 조항
가장 흔한 갑질입니다. 계약서에 수정 횟수가 명시되지 않거나, "甲이 만족할 때까지" 같은 모호한 문구가 들어갑니다.
"수급인은 도급인이 만족할 때까지 결과물을 수정·보완하여야 한다."
이 문구는 실제로 한국 외주 계약서에 자주 등장합니다. 문제는 "만족"이라는 주관적 기준이 사용자(도급인) 일방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00번을 고쳐도 "아직 부족하다"고 하면 끝나지 않습니다.
법적 근거
민법 제2조(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권리 행사는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합니다. 일방이 무한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권리 남용에 해당할 수 있으며(민법 제2조 제2항), 하도급법 제5조(부당한 위탁취소의 금지)에서도 정당한 사유 없는 반복 수정 요구를 부당행위로 봅니다.
협상 문구
"수급인은 본 계약 범위 내 결과물에 대해 최대 3회까지 무상 수정을 제공한다. 4회차부터는 회당 OO원의 추가 비용을 청구할 수 있으며, 도급인의 수정 요청이 본 계약의 범위를 초과하는 경우 별도 협의 후 진행한다."
2. 저작권 전부 양도 + 인격권 포기
디자인·개발·콘텐츠 외주에서 가장 큰 손실이 발생하는 지점입니다. 클라이언트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구를 넣습니다.
"본 계약 결과물의 저작재산권 일체와 저작인격권은 도급인에게 영구히 귀속된다."
왜 문제인가
한국 저작권법상 저작인격권은 양도 불가능한 일신전속권(저작권법 제14조)입니다. 그런데도 계약서에 "양도"라고 적힌 경우, 실무상 "행사하지 않겠다"는 부행사 합의로 해석됩니다. 즉 본인 작품을 포트폴리오에 올리지도, 본인 이름으로 공개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또한 저작재산권을 전부 양도하면 본인이 만든 코드·디자인 컴포넌트를 다른 프로젝트에 재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외주 1건으로 본인의 미래 자산까지 묶이는 셈입니다.
협상 문구
"본 계약 결과물의 저작재산권은 도급인에게 양도한다. 단, 수급인은 본 결과물을 비상업적 포트폴리오 목적으로 공개·전시할 권리를 보유하며, 본 계약 수행 과정에서 작성된 범용 컴포넌트·라이브러리·디자인 시스템 요소는 수급인의 일반 업무 자산으로 인정한다. 저작인격권은 저작권법 제14조에 따라 수급인에게 귀속된다."
3. 미지급 시 자동 종료 / 일방적 해지권
계약 해지권이 한쪽에만 있는 패턴입니다.
"도급인은 본 계약을 언제든 해지할 수 있으며, 이미 지급된 대금 외에는 추가 보상 의무가 없다."
왜 문제인가
프리랜서가 2개월간 작업 후 80% 완성한 시점에 클라이언트가 "그냥 안 할래" 하고 해지하면, 계약금 30%만 받고 끝납니다. 나머지 50%의 작업분은 무급이 됩니다.
민법 제673조(도급인의 해제권)에 따라 도급인은 일을 완성하기 전에 계약을 해제할 수 있지만, 수급인의 손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즉 "이미 지급된 대금 외 보상 없음" 조항은 민법 제673조에 반하며, 약관규제법 제6조(공정성 원칙)상 무효 가능성이 높습니다.
협상 문구
"도급인이 본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경우, 수급인이 해지 시점까지 수행한 작업분에 상응하는 대금과 수급인이 본 계약을 위해 거절한 다른 기회비용 등 손해를 배상한다(민법 제673조)."
4. 위약금·지연배상의 비대칭
지연배상금이 프리랜서에게만 부과되고, 클라이언트의 지급 지연에는 아무 페널티가 없는 경우입니다.
"수급인이 납기를 지연한 경우 1일당 계약금의 1%를 위약금으로 지급한다."
(도급인의 대금 지급 지연에 대해서는 아무 조항 없음)
왜 문제인가
하도급법 제13조(하도급대금의 지급 등)에 따르면, 도급인이 대금을 지연 지급할 경우 지연이자(연 15.5% 등)를 지급해야 합니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이 조항이 빠진 채 수급인의 위약금만 명시되어 있다면, 명백한 불공정 조항입니다.
또한 1일당 1% 위약금은 한 달이면 30%, 두 달이면 60%로 사실상 계약금 전액을 잃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민법 제398조(배상액의 예정)에 따라 법원은 이를 감액할 수 있지만, 분쟁 시 입증 부담이 프리랜서에게 옵니다.
협상 문구
"쌍방의 채무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은 다음과 같이 대칭적으로 적용한다.
① 수급인 납기 지연: 1일당 계약금의 0.3%, 단 총 위약금은 계약금의 10%를 초과하지 않는다.
② 도급인의 대금 지급 지연: 하도급법 제13조에 따른 지연이자(연 15.5%)를 지급한다."
5. 손해배상 범위 무제한 / 비밀유지 위약벌
가장 위험한 조항입니다. 한 줄로 프리랜서가 사업자 인생이 끝날 수 있습니다.
"수급인이 본 계약상 의무를 위반하여 도급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일체의 손해를 배상한다."
또는 NDA(비밀유지) 조항에 다음이 들어가 있는 경우.
"수급인이 본 계약상 비밀을 누설한 경우 건당 1억원의 위약벌을 지급한다."
왜 문제인가
손해배상 범위가 무제한이면, 클라이언트가 입은 간접손해·기회비용·평판 손해까지 청구당할 수 있습니다. 1년 소득의 수십 배가 청구될 수 있습니다.
위약벌(罰)은 손해와 별도로 청구 가능한 페널티이며, 민법 제398조의 배상액 예정과 달리 법원의 감액 대상이 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다만 대법원은 과도한 위약벌을 공서양속 위반으로 무효화하기도 합니다 — 대법원 2015다72385 등).
협상 문구
"수급인의 책임은 고의·중과실로 인한 직접적·통상적 손해로 한정하며, 총 배상액은 본 계약 금액을 초과하지 아니한다. 간접손해·일실이익·평판 손해는 책임 범위에서 제외한다."
정리 — 받자마자 보는 5가지 빨간줄
- 수정 횟수가 명시되어 있는가? "만족할 때까지" 류 문구는 무조건 협상 대상.
- 저작권 양도 범위가 결과물에 한정되어 있는가? 포트폴리오 사용권은 보유했는가?
- 해지 시 보상 조항이 양방향인가? 일방 해지 시 수급인 손해배상이 명시되었는가?
- 지연배상이 양방 대칭인가? 도급인 대금 지연 시 지연이자 조항이 있는가?
- 손해배상 한도가 계약 금액으로 캡(상한)되어 있는가? "일체의 손해" 류 문구는 반드시 협상.
이 5가지를 다 협상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최소한 1번과 5번만이라도 명확히 해두면, 프리랜서로서 회복 불가능한 손실은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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